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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도 너무 서두른다
문 희 봉(시인·평론가)  |  sjc@tvsj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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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17  23: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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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희 봉(시인·평론가)

1950년 6·25를 통해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정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발효되고 나서 지금까지 달라진 것이 없다. 현재 미·북 간, 남북 간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북의 비핵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미국은 제재의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김칫국부터 먼저 마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이에 우리의 대북제재 의지가 약하다고 미국인의 눈에 비쳐지고 있다. 개성공단 재가동, 전기공급, 금강산 관광 재개 등등 우리가 할 일도 많다. 그런데 이런 것은 유엔의 북한 제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져야 옳다.


  지난 5월 국내 A은행 관계자들이 미 금융·사정 당국의 호출을 받고 비밀리에 미국에 다녀왔다고 한다. 미국의 대(對) 이란 제재법 위반 혐의와 관련한 미국 측의 질의에 답을 하기 위해서였다.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2년 이 은행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의 원화 결제 계좌에서 위장 거래로 거액이 빠져나간 정황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불량 국가에 대한 경제 제재 시스템을 고안하고 주도해온 미국은 '작은 구멍'에 대해서도 가차 없다.


  조사가 철저한 만큼 응징도 가혹하다. 미국법은 제재 위반이 확정된 업체에 대해 처벌 조치가 엄격하다. 미국 관할권 내 외환 거래 금지, 은행 신용거래 및 지불 금지, 자산 거래 금지, 미국으로의 수입 금지 등이 포함된 조치는 사실상 '달러 시스템에서의 축출'을 의미한다. 기업에는 사망 선고다.
  이런 와중에 북한산 석탄의 국내 반입이 이루어졌다.

불법 반입 의혹이 불거진 이후 많은 전문가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 건은 우리 5·24 조치뿐 아니라 유엔 안보리 제재 및 미국 독자 제재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여론이 악화되자 서둘러 '일부 영세 수입업체의 일탈'로 규정한 조사 결과를 내놓고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했다. 하지만 제재 전문가들은 "어림없는 소리"라고 말한다. 정부는 의혹을 제대로 파헤치기보다는 경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적당한 선에서 덮으려고 한다는 인식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것 같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되느냐와 별개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 내에서 한국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안 그래도 미국 싱크탱크 인사들은 "한국은 북핵 위협의 최대 당사자로서 비핵화를 위한 제재에 가장 앞장서야 하는데, 그런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의무는 이행 않고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개설, 이란산 원유 수입 등과 관련해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요구만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부는 "왜 한국 언론만 난리냐."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려 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가릴 하늘이 아니다. 한·미 간 신뢰에 금이 가면 문재인 정부가 바라는 남북 관계 진전도 속도를 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즘 태극기 게양 실태를 보자. 삼일절, 광복절 같은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은 국민의 의무다. 그런데 지금은 태극기를 게양하라는 방송도 듣기 어렵다. 알아서 하라는 얘기다. 제73주년 광복절이었던 지난 15일, 강원도 화천 주민 3,200여 명이 가입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아파트 사진이 올라왔다. "군인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밝힌 주민은 사진과 함께 "광복절인데도 우리 집까지 세 집만 태극기를 게양했다."는 글을 남겼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신문 보도에 의하면 같은 날 강원도 춘천의 한 군인 아파트에는 전체 593가구 중 206가구(34.7%)만 태극기가 게양돼 있었다고 한다. 태극기로 빼곡했던 예년과 사뭇 달랐다.

충남 태안 국방과학연구소 관사(官舍)에도 태극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는 연구소 소속 군무원과 공무원 등 200여 가구가 살고 있다. 태극기를 걸었다는 연구소 관계자는 "아침에 보니 태극기를 건 집은 다섯 곳도 안 됐다."고 말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상징이다. 언젠가 미국에 갔을 때 그곳에서 태극기를 보고 가슴이 뭉클해진 기억이 있다. 어느 도시에서는 삼성과 현대의 사기(社旗)가 걸려 있었다. 국력신장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 그 나라의 국기다. 우리의 국기인 태극기가 국경일에도 이런 대접을 받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여당 의원이 6·25 전쟁 중 북한에 강제로 끌려간 전시 민간인 납북인의 법적 용어를 ‘실종자’로 바꿔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해 논란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이 지난 13일 대표 발의한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는 ‘6·25전쟁 중 본인의 의사에 반해 북한에 의해 강제 납북돼 북한에 억류 또는 거주하게 된 자’를 일컫는 ‘납북자’라는 법적 용어를 ‘전시실종자’로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송 의원은 법률 제안 이유로 “‘납북자’라는 표현은 북한 측에서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단어로, 실제 장관급 회담 등 실무회담에서는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는 식으로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며 “‘납북자’의 표현을 ‘전시실종자’로 변경함으로써 법률상의 용어로 인한 남북관계에서의 충돌을 완화하기 위한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려고 한다.”고 밝혔는데 설득력이 부족하다. 왜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까지 우리의 자존심을 추락시키려 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잠시 월경해 북측 땅을 밟았다. 사전 브리핑에도 없던 일정이었다. 화해 무드로 봐야 할지 헷갈리는 대목이다. 다시금 말하거니와 북한은 지금 비핵화를 천명하고는 있지만 실천한 것도 아니고 정전상황이라는 사실을 인지했으면 좋겠다. 지난 금강산 관광 때 금지구역을 출입했다는 이유로 민간인이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한 사건이 머리를 스친다.


  국방부는 지난 24일 국회 국방위 업무보고에서 최전방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의 병력과 장비를 시범적으로 철수하고, 종국적으로는 전면 철수까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것도 완전 비핵화 합의가 이루어진 다음에 서서히 취할 행동이라 생각된다. 또 비무장지대 내의 GP의 철수를 결정했다는 보도도 있다. 이렇게 쉽게 결정할 사항이 아닌 것 같다. 국방부가 청와대 눈치를 보며 성급하게 경계를 풀기보다 GP의 역할에 대해 신중히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주한 UN군 사령부의 해체도 화약고가 될 수 있다. UN군 사령부는 한국전쟁에 따른 관리·감독을 위한 기구다. 종전 선언에 따른 평화 협정이 이루어진다면 UN군 사령부는 해체할 수밖에 없다. 평화 협정 체결 후에는 미군의 지속적 한반도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본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가. UN사를 덥썩 해체해 놓고 북한이 전면전 등 도발을 일으켰을 경우 미국과 별개로 UN 차원의 즉각적인 개입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생각해보고 결정한 조치인지 안보에 문외한인 사람이 물어보고 싶다.


  국민은 정부를 믿고, 대통령을 믿고 매일밤 숙면을 취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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